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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처럼, 단순함이 화려하게 빛날 거야” 어나더오피스의 미학

인터뷰 - 스왈로우라운지 신동수, 서주형 디자이너

인터뷰 – 스왈로우라운지 신동수, 서주형 디자이너

 

게으른 천재와 노력파 엘리트의 하모니

 

2001년 여름 방학이었다. 대학생 서주형은 텅 빈 강의실을 찾았다. 담당 교수한테 기말 과제로 제출했던 그의 ‘패션 일러스트’ 그림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강의실 한편에는 채점이 끝났지만 찾아가지 않은 그림 꾸러미가 쌓여 있었다.

지나가던 청소 아주머니가 곧 버릴 것이라고 일러줬다. 그 중 곧 잘 그려진 일러스트를 주섬주섬 챙겼다. 어차피 버려질 처지였으니 괜찮다. 서주형은 철만 되면 그렇게 채점이 끝난 다른 사람의 과제까지 챙겼다. 혹시나 다른 학생이 제출한 과제에서 그가 배울 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리고 습관이 됐다.

천성 탓일까. 쉽사리 기회를 주지 않는 세상이니 스스로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2008년 그는 결혼하면서 짐을 정리할 때 깜짝 놀랐다고 했다. 쏟아져 나온 대학 시절 때 모아뒀던 일러스트 과제와 그림을 보니 대부분 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신동수’다. 국민대 의상디자인학과 93학번 선배. 그해 그와 결혼한 남편 이름이었다.

 

게으른 천재, 노력파 장학생

 

대학 시절 서주형은 학교 홍보 모델에 뽑힐 만큼 엘리트였다. 그리고 항상 장학생으로 꼽혔다. 당시 신동수는 낙제점만 아니면 재수강 같은 건 전혀 생각지도 않던 복학생이었다. 그런데 타고난 소질 탓인지 디자인 감각은 남들보다 뛰어났다. 이렇게 둘은 다른 부류였다. 서주형의 말을 빌리자면 그가 챙긴 일러스트와 패턴 대부분이 ‘게으른 천재’ 신동수의 것이었다.

사실 신동수 디렉터와 서주형 실장이 함께 브랜드 ‘어나더오피스(Another Office)’를 론칭하기 전 걸어 왔던 길도 조금 다르다. 신동수의 첫 발은 아이러니하게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그리고 친형의 권유로 동대문 시장에 발을 들였다. 색분해 프린트기법으로 대박을 친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염가에 납품을 하지 않으면 카피를 하겠다고 되레 으름장과 갑질을 해온 패션 기업을 상대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일을 겪고 난 신동수는 그래픽은 쳐다보지 않는 디자이너로서 길을 선택했다. 누군가 다시 그의 디자인을 훔쳐 가지 않을까 생각한 일종의 자기 방어다. 지나간 일이지만 동대문 시절 색분해 프린트 기법은 신동수 디렉터가 의류 업계서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라고 한다. 카피를 피하기 위해 조용한 곳으로 옮겨도 귀신 같이 찾아내 패션 기업들이 매번 베껴가기 일쑤였다. 신동수 디렉터는 당시 기억을 떠 올리고 싶지 않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반대로 서주형 실장은 무인양품, 자라, H&M 등을 거쳐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 일했다. 안정된 대기업의 톱니바퀴의 길을 걸었다. 여성복 디자이너로 2년, 그리고 머천다이저, 세일즈 매니저, 모델리스트, 사내 프로젝트 TF까지 기업의 경영활동에 필요한 모든 것을 경험했다.

남편 신동수 디렉터가 “함께 어나더오피스를 만들자”라고 제안하기 전까지.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16년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두 사람, 신동수와 서주형 부부 손에서 ‘어나더오피스’가 론칭됐다. 당시 서주형 실장은 남편 신동수 디렉터가 함께 하자고 했을 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게으른 천재’ 신동수를 믿었다.

 

디지털 퍼스트 시대 新 아뜰리

 

실제 론칭 5년차인 ‘어나더오피스’를 보면 프랑스 국민 브랜드로 불리는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와 일본의 느림의 미학을 담아낸 유명 브랜드 오어슬로우(orslow)의 모습이 보인다. 드러난 형태감이 아닌 베이직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이다. 묵직한 브랜드의 철학과 세계관이 5년차 브랜드에 깊게 녹여져 있다.

오히려 패턴의 구조적인 모습은 ‘어나더오피스’가 더 섬세하다고 말해도 과장되지 않을 정도다. 좋은 소재를 알맞게 쓰고 이에 걸맞은 패턴을 잡는다. 꼬박 며칠이 걸려도 만족할 때까지 한다. 대신 그래픽은 일절 넣지 않는다. 신 대표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다. 그런 탓인지 ‘어나더오피스’의 겉을 흉내 내거나 따라하는 브랜드가 등장하고 있다.

그 수도 참 많다. 내로라하는 패션 대기업부터 신동수, 서주형을 표방하는 젊은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어나더오피스’를 보면 흡사 디지털 퍼스트시대에 등장한 잘 만들어진 아뜰리에 브랜드 같다. 지난 2일, 6개월간의 설득 끝에 서울 장충동 스왈로우라운지에서 둘을 만났다. 여전히 바쁘다고 했다. 이 날도 신동수 대표는 디자인 작업으로 밤을 꼬박 새운 날이다.

스왈로우라운지는 신동수 대표가 서주형 실장이 합류 전 혼자 5평 남짓한 지하 공간에서 시작할 당시 지은 이름이다. 지금은 장충동 일대서 디자인실, 물류, 검품, 쇼룸 등 5곳으로 사무실을 나눠 쓰고 있다. ‘스왈로우라운지’는 시인 ‘이상’과 기생 ‘금홍’이 운영했던 예술인의 쉼터 ‘제비다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나머지 인터뷰는 문답으로 이어간다.

 

‘터미네이터’와 ‘모래요정 바람돌이’를 꿈꾼 두 아이

 

두 사람은 게으른 천재와 노력파 엘리트라고 들었다.

 

신동수(이하 신): 게으르지만 손재주가 많다. 집안 내력이다. 천재는 더더욱 아니다.(웃음) 대입학력고사(지금의 수학능력시험) 전날에도 3시간이 넘는 프랑스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재수 준비를 할 때도 여름이 지나서야 화실과 학원을 등록할 정도였다. 그나마 예나 지금이나 예민할 정도로 집중력이 좋은 것은 나의 가장 큰 장점이다. 서주형 실장과 처음 만났을 때 서로 다른 점이 그에게 스트레스가 아닌 긍정으로 작용할거라 확신이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같이 사업을 하며 잘 살고 있다.

서주형(이하 서): 새로운 것을 배울 때 한 번에 잘 이해하고 깨닫는 편이 아니다. 꼼꼼하지도 않고 엘리트도 아니다. 남들보다 시간을 많이 들여 노력했을 뿐이다. 신동수 디렉터와 같은 학교를 다녔고, 옷을 만든다는 점은 같지만 성격과 취향이 전혀 달랐다. 대학 졸업 후에 신동수 디렉터와 만나면서 보니 분명히 전혀 학교에 나오지 않던 아웃사이더였는데 몇 갑절은 더 노력한 나보다 패턴도 잘 뜨고 수정하더라. 음악을 듣거나 건축물을 보고 디자인 영감을 얻기도 한다.

창의적인 일은 노력으로는 해결이 안 되며 타고난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렇게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결혼해서 오랫동안 살면서도 몰랐다. 같이 일하면서 알게 되더라. 옷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며칠 동안 몸이 아플 정도로 괴로워한다. 이제는 그렇게 신경 쓴 ‘어나더오피스’가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 두 사람에게 패션은 무엇일까?

 

신: 취미로 시작한 일은 아니니까. 당연히 업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터미네이터’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영화 줄거리보다 주인공의 멋진 바바리코트와 낡은 줄무늬 티셔츠, 헐렁한 면바지에 나이키 농구화가 한 눈에 들어왔다. 순간 심장이 멎는 듯 했다. 첫 패션의 판타지라고 할까. 점차 내 관심은 TV 드라마나 가요프로그램이 아닌 AFKN(주한미군 방송)과 주말의 명화에 등장하는 외국 배우의 헤어스타일과 멋진 옷차림이었다.

중학교 때 일본 오사카에 살았던 고모를 통해 구한 세이코 시계, 맨즈논노 같은 잡지는 당시 보물과 같았다. 고등학생 때는 고모가 일본 아메리카 무라(AMERICA MURA)에서 사다 준 허리 전체가 가죽으로 장식된 캘빈클라인 청바지 위에 야상 재킷을 입고 컨버스화를 신었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스틸 사진 몇 장을 보고 따라 한 것이었다.

한 달 정도 다녔던 서울 산업대(공업 디자인과)를 관둔 것도 내가 정말 좋아 하는 게 패션일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지금도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기억들과 이미지를 풀어내는 매개체로 옷을 다루고 시즌을 풀어내고 있다. 이번 겨울 시즌 룩북도 25년 동안 내가 살아온 장충동에서 촬영했다.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모든 잔상과 추억이 ‘어나더오피스’에 담겨 있어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서: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난 탓에 항상 언니들의 옷을 물려 입었다.(웃음) 불만이었다. 예쁘게 옷을 입고 유치원에 가고 싶었다. 텔레비전으로 만화를 보는데 ‘모래요정 바람돌이’에서 나와 같은 막내 여자 아이가 옷을 마음대로 입지 못하더라. 속상해하자 바람돌이가 하루 마법 선물로 ‘후후~’ 바람을 불면 원하는 옷으로 변하는 흰 천을 주었다. 혹시나 싶어서 내 옷을 ‘후후’ 불어보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선진 패션을 케이블TV를 통해 경험했다.

그때 처음으로 4대 해외컬렉션을 보고 신선한 충격에 빠졌다. 당장 옷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 인생의 진로를 패션으로 설계한 계기다.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입고 싶었던 막내딸의 ‘패션 결핍’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게 아닐까.

 

5평 지하 ‘제비다방’에서 신동수, 서주형의 출발

 


 

스왈로우라운지의 첫 단추는 어떻게 꿰어졌나?

 

신: 처음 동대문에서 개인 사업을 했고 서주형 실장은 패션 대기업에서 근무했다. 교집합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어나더오피스’를 구상할 때 서주형 실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동대문 사업이 건재했더라면 사실 ‘어나더오피스’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운명이다.

서: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 근무할 때였다. 신동수 디렉터가 불쑥 함께 하자고 했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30년 후 회사를 그만 둔 나를 후회할지 남편인 신동수 디렉터가 같이 일을 하자는 제안을 거절한 게 후회될지 생각해보니 바로 답이 나왔다. 그리고 곧장 회사를 그만뒀다. 신동수 디렉터는 폐쇄적인 성향이다. 본인 얼굴과 이름을 내세우는 걸 사실 싫어한다.

그런데 본인 이름으로 내걸더라도 브랜드를 해야겠다고 도움을 요청하더라. 신동수라는 뛰어난 디자이너가 세상에 묻히는 게 싫었다. 그리고 3천만 원이라는 여유 자금을 만들어 함께 스왈로우라운지의 첫 단추를 꿰었다.

 

– 스왈로우라운지, 그리고 어나더오피스의 이름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신: 스왈로우라운지(Swallow Lounge)는 일제시대 시인 ‘이상’과 기생 ‘금홍’이 운영하던 예술인의 쉼터 ‘제비다방’에서 따온 이름이다. 당시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 술과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서로의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낭만적인 장면을 상상하며 레이블을 만들게 됐다. ‘어나더오피스’는 스왈로우라운지에 소속된 의류 브랜드 중 하나다. 어떤 장소에서 일을 하건 그곳이 자신만의 오피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컬렉션이 포멀과 캐주얼의 경계에 선 것들이 많다.

 

– 디자이너와 바이어들 사이에 유명하더라. 어떤 철학과 세계관을 갖고 있나?

 

신: 거창하게 세계관으로 내세울 만한 것은 없다. 잘 만들어진 옷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공감할 요소가 풍부하고 탄탄하게 짜인 옷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브랜드의 위대한 이야기를 찾아 헤맬 수 있지만 서주형 실장과 우리답게 브랜드를 꾸려가고 있다. (브랜드 유명세는?) 2016년 SS시즌 브랜드 론칭 일주일 만에 정말 많은 입점 제의를 받았다. 하루 동안 이메일이 꽉 찰 정도였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온오프라인 편집숍이 있는지 그때 알았다. 우리가 초반부터 주목을 받았던 것은 당시에 찾기 힘든 일상적인 느낌의 룩북 분위기가 신선하게 전해진 것 같다. 물어보니 주변 사람들이 내가 직접 모델을 찾아 촬영, 편집한 룩북이 업계에 작은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더라. 거기다 길이가 긴 셔츠와 줄무늬가 빠진 바스크 셔츠(Basque Shirt; 프랑스 바스크 지방에서 유래된 티셔츠의 종류)는 바이어들이 새로운 해석이라며 흥미롭게 봐주기 시작했다.

 

일과 일상의 균형을 만드는 사람들의 옷

 

– 두 사람은 주로 어떤 옷을 만드나?

 

신: 장식이 없고 미니멀한 옷들을 만든다. 내가 일상에서 즐겨 입는 옷들을 토대로 만든다. 직장에서나 일상에서도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 그런 옷. 2015년 여름, 브랜드를 간략히 두 줄 정도로 설명할 때 이렇게 적었다.

‘어나더오피스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일할 때나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의류, 소품을 만든다. 일과 일상의 균형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옷이다.’
서: 창의적인 일은 노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신동수 디렉터 통해서 깨닫게 됐다. 시즌 기획 단계에서 함께 의논하지만 철저히 신동수 디렉터에게 맡긴다.
그 외 업무는 내가 담당한다. 간단히 말하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사업부장 정도쯤 될 것 같다. 나는 매일 아침 고객문의와 리뷰를 챙긴다. 고객 관리의 모든 일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가 빠지지 않고 다 관여하고 있다.

그리고 대기업과 글로벌 브랜드에서 인사(HR), 매장손익관리 등 큰 팀을 운영해본 경험이 신동수 디렉터와 함께 브랜드를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옷을 만드는 데 모든 힘을 집중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우리가 무엇이 부족하고, 어떤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하는지 너무나 객관적으로 잘 알고 있다. 만약 그것을 모르고 사업이 갑자기 성장하면 불안하기도 할 텐데, 지금까지 속도조절을 잘 해왔다고 생각한다. 내년부터는 조금 더 각 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하려고 한다.

 

– 어나더오피스의 옷에서 그래픽은 찾아볼 수 없다.

 

신: 친형이 동대문에서 도매 사업을 했다. 나는 그때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보수도 좋았다. 인쇄 그래픽 일도 종종 했다. 졸업 후 유명 게임회사에서 입사제의 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형이 운영하던 도매 브랜드의 티셔츠 그래픽 작업 알바를 제의했다. 3~4개쯤 작업해줬는데 그게 한마디로 대박이 났다. 어차피 게임 그래픽에 흥미가 있지 않았던 터라 형을 돕는 일에 몰두했고 줄줄이 대박을 치더라. 그렇게 4년을 돕다 2004년 독립해 여성 티셔츠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도매 브랜드를 냈다.

화산이 폭발하듯 주문이 터져 나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해외 SPA뿐만 아니라 국내 대형 브랜드까지도 내가 만든 그래픽을 그대로 스캔해 표절 제품으로 팔기 시작했다. 동대문에서도 내가 만든 똑같은 그래픽이 새겨진 티셔츠를, 그것도 반값에 파는 곳만 100곳이 넘을 정도였다.

이때 우울증도 생겼다. 결국 내가 차린 도매 사업은 망했다. 그때 남은 건 은행 빚과 아파트 담보 대출, 서주형 실장뿐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그래픽이 없는 옷, 내가 평소 좋아하던 옷 그리고 완벽한 패턴과 최상의 소재의 표절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서주형 실장과 함께. 그게 ‘어나더오피스’다.

 

사람들이 주목한 적록색약의 디자이너 ‘신동수’

 

– 론칭 2년차에 SFDF에 입상했다. 그때 모습이나 지금이나 같다.

 

신: “동수야 너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 보다 네가 갖고 있는 분위기나 좋아하는 스타일을 그대로 녹여서 사람들을 따라올 수 있게 만드는 게 나을 것 같다.” ‘어나더오피스’를 시작하기 전 형이 나에게 해준 말이다. 종종 오래된 친구를 만나도 “스무살 때나 지금이나 넌 모든 게 다 똑같다”고 했다. 그래서 나의 경험과 심상(心象)을 그대로 옷에 담았다. 일관되게 흐르는 하나의 브랜드 콘셉트는 크게 변하지 않는 ‘나, 신동수’라는 사람이다. 삼성패션디자인펀드에서도 이런 점에 후한 점수를 준 것 같다.

 

– 디자인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

 

신: ‘어나더오피스’의 지난 2018년 S/S 컬렉션 ‘캄 밸런스(Calm Balance)’를 예로 들자. 일본 도쿄 메구로 지역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눈앞에는 낯선 건축물이 펼쳐졌다. 그리고 건물 사이를 가로지른 길과 따사로운 햇볕이 내려앉은 사물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이루는 균형 속에 마음의 평온을 느꼈다.

그래서 2018년 S/S 시즌 때 시각적 기억들을 색과 질감, 실루엣 등으로 형상화 시켰다. 개인적인 시각적, 감성적 경험이나 영화, 음악, 건축물 등에서 큰 틀의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흐려진 시야가 맑아지는 느낌으로 구체화시켜 나간다.

(그렇다면 디자인 요소에 차이가 생기나?)

가장 큰 특징과 차별점이 조형성과 지속성이다. 착용자는 저마다 다른 체형을 가지고 있다. 뒤집어 생각하면 맞춤복이 아니면 사람마다 간극이 생긴다. 하지만 좋은 재료와 꼼꼼한 패턴, 수준 높은 봉제로 제작된 옷은 기본적으로 조형성이 훌륭하다. 체형 때문에 생기는 만족도의 간극이 좁혀진다.

서: 말을 보태자면 우리 부부는 어려서부터 미술을 배운 의상 디자인 전공자다. 단면도와 수치를 보고 입체와 형태를 미리 가늠할 수 있는 훈련을 받고 자랐다. 조형적인 면에서 조금 더 섬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20FW발마칸>

철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옷이 많다. 그리고 베이직하다.

 

신: 나는 적록색약이 심한 편이다. 홍익대가 아닌 국민대를 지원했던 이유가 그때 당시 색채구성 시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피곤하면 청바지가 갈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내가 고른 색들은 정확히 한 가지 이름의 색깔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오묘한 톤다운된 것이 많다. 이런 중의적인 컬러들이 모이니 오히려 어떤 통일감과 특유의 색감과 분위기가 생기더라. 매 시즌 옷이 같아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대신 옷 한 벌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데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미세한 청바지 핏을 수정하려고 한 자리에서 6시간동안 피팅을 보다가 서주형 실장에게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웃음)

게으른 사람이 꼼꼼하게 일을 하려니 신제품을 내기가 어렵다. 치명적 약점이다. 그러다 해외 브랜드를 연구해보니 정말 잘 만들어진 브랜드의 시그니처 아이템은 해가 지날수록 가치가 더욱 빛나더라. 또 대략 5년 주기로 다시 이슈가 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질문처럼 ‘어나더오피스’의 기존 소비자들과 처음 접한 사람들이 시즌마다 시그니처 컬렉션이 발매되는지 궁금해 묻는 경우가 많다.

같은 상품이라도 시즌마다 다른 종류의 원단을 쓰고 알맞게 패턴과 디자인을 미세하게 수정하다. 옷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신상품을 디자인하는 것보다 까다롭고 힘든 작업이라는데 공감할 것이다. 대표적인 시그니처 아이템이 ‘발마칸 코트’다.

 

단순하지만 ‘소재·만듦새·룩북’ 입소문 터져

 

– 인체에 해가 되지 않는 소재만 쓴다고 알려져 있다.

 

신: 서주형 실장과 브랜드 론칭부터 지향했던 방향이다. 앞서 말했지만 표절 제품이 나오더라도 그것과 다른 점을 소재에서 주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브랜드 아펜쳐(ARPENTEUR)를 좋아한다. 봉제가 뛰어나지 않지만 좋은 소재만 사용한다. 확실히 그런 옷은 오래도록 입게 된다. ‘어나더오피스’도 같다.

유럽 에코기준을 통과한 이탈리아산 데님 원단을 쓴다. ‘생로랑’ ‘발렌시아가’ 등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다. 바지 안감은 싸구려 합성섬유 대신 겉감용 면 소재를 넣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피부에 닿는 원단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많다. 국내서 구하기 힘들면 각국에서 질 좋은 원사를 들여와 우리 취향에 맞게 제직하고 있다.

 

– 마케팅도 안하는데 발매하는 상품마다 품절이더라.

 

서: 우리를 포장하는데 소질이 없는 것 같다. 흔한 유료 협찬도 안 해 봤다. 그냥 우리랑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옷을 잘 만들면 사람들이 찾게 될 것이고 그렇게 번 돈으로 좋은 원단을 산다. 많은 패션 기업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옷 자체를 만드는 것보다 보고서 작성, 마케팅과 홍보 같은 후속 활동에 많은 힘을 쓰더라. 반대로 내가 만들어 가는 브랜드는 옷 자체에 그 힘을 온전히 다 쓸 수 있고 앞으로도 그러기 위해 지금도 모험 중이다.

만약 좋은 상품을 만들었는데, 고객이 몰라서 못 산다면 모를까. 아직 별다른 마케팅 활동 없이도 고맙게도 잘 팔린다. 최근 들어 재구매율이 90% 이상 되는 것 같다. 출시되는 모든 옷을 색상 별로 구매하는 소비자도 있고, 구매 후기 사진을 보면 옷장 대부분이 우리 옷으로 채워져 있는 분도 있더라. 크고 유명한 브랜드 사이에서 생소할 우리의 옷을 구매한 고객께 항상 감사드린다. 덕분에 용기내서 매 시즌 새로운 아이템, 원단, 부자재들을 연구하고 시도할 수 있다.

신: 론칭 2년차인 2017년 S/S때 발매된 코트의 초도 물량 200여 장이 하루 만에 동났다. 거래하고 있는 온라인 편집몰에서 정말 잘 만들어진 옷이라며 잘 팔아주었다. ‘어나더오피스’는 특유의 감성과 상품력만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론칭 초기에는 많은 오프라인 편집숍과 거래했지만 지금은 판매처를 전부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온라인 판매처도 전보다 줄였다. 우리의 성격에 맞는 곳에 집중하고 싶다. 그럼에도 팬들이 많다. 4~5년간 우리 옷에 대한 긍정적인 데이터와 입소문 덕분에 구매고객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또 다시 시장은 표절 브랜드로 진흙탕

 

– ‘어나더오피스’를 따라하는 브랜드가 많다고 하던데.

 

서: 표절은 창의성이 없는 사람이 창의적인 일을 하려다 생긴 것이다. 다른 사람의 창조물을 보지 않으면 아무 결과물을 낼 수 없는 사람은 그 분야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처음 우리 옷을 접했던 업계 사람들은 “그런 단순한 옷이 팔리겠냐”라고 핀잔을 줬다. 화려한 로고, 스트리트 캐주얼과 도매스틱이 유행이었으니까.

그런데 우리 옷이 좋은 반응을 얻자 콘셉트, 에디토리얼과 상품 소개 글, 색상 이름, 룩북 스타일까지 따라하더라. 심지어 유통 파트너까지도 ‘어나더오피스’같은 옷과 브랜드를 만들라며 입점 브랜드를 부추긴다고 들었다. 이제는 표절 브랜드끼리도 표절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론칭 첫해 선보인 ‘보이저 발마칸 코트’는 클래식한 복식 위에 테크웨어적인 요소와 디자인을 결합,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디자인 특허를 확보한 옷이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변리사와 상의해 특허를 출원하고 있다. 지금 국내 시장에서 불고 있는 ‘발마칸 열풍’의 시발점이 ‘어나더오피스’다. 얼마 전 입점해 있던 패션 대형사의 편집숍에서 퇴점한 이유도 표절 시비 때문이다. 후배 디자이너에게 물어보니 생각보다 우리 같은 고초를 겪는 브랜드가 많더라.

신: 동대문 시장에서 표절 브랜드 때문에 망했었다. 제도권으로 나오면 덜하지 않을까 했는데 더 한 진흙탕이더라. 2018년도에 내 입으로 말했던 삼성패션디자인펀드 입상 인터뷰 내용도 그대로 자기 철학인 것처럼 말하거나 밤을 꼬박 새우며 고민해 써 내려간 상품설명도 짜깁기해서 인터뷰한 디렉터도 봤다. ‘리플리 증후군’처럼. 내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기획했던 것들이 낮은 수준으로 확대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두 번째 도전…아뜰리에 브랜드 한계 극복

 

– 두 사람이 모든 것을 다하는 아뜰리에 브랜드의 길을 걷고 있다.

 

신: 상품 기획부터 판매까지 모두 두 사람이 총괄하는 구조적인 면에서 본다면 아뜰리에 브랜드라 할 수 있지만 생산량이나 공장들을 고려하면 단정할 수만은 없다. 또 그 사이의 조율이 현재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이기도 하다. 사실 여전히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제작 공정을 갖춘 공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옷은 미니멀한데 외형에 비해 제작이 무척 까다롭다. 우리 옷의 패턴만 보고도 공장에서는 고개는 내젓는다. 우리가 아직 거기에 맞는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들지 못해 몸으로 때우는 중이다.(웃음)

서: 사실 둘만 있는 건 아니다. 디자인, 기획, 생산, 이미지 작업까지 나와 신동수 디렉터가 하지만 13명의 스탭들이 있다. 상품 검수와 배송 업무만 10명이 맡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마저도 바쁠 때는 우리를 비롯한 모든 인원이 검수와 배송에 매달린다. ‘어나더오피스’의 철학과 맞닿아 있는데, ‘완성도 있는 옷’ ‘받아서 바로 착용할 수 있는 옷’에 가치를 두고 있다. 최근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서 우리 안에서 좀 더 체계화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 노력 중이다. 얼마 전 국내 패션 대기업이 투자 제의도 해왔다. 돈만 바라보고 사업 규모를 키우려면 이미 했을 것이다.

 

– 좋은 옷과 나쁜 옷이 있나? 그리고 둘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팔고 있나.

 

신: 세상에 나쁜 옷이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좋은 옷과 그렇지 않은 옷의 차이는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 아닐까.
우리 디자인을 베껴 반값에 판매되는 옷은 우리에게 휴지보다 가치 없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모호한 말과 함께 정말 마음에 들 수도 있다.

‘어나더오피스’도 어떤 고객에게는 적당한 가격의 품질 좋은 옷이 될 수 있고, 누구에게는 그저 그런 것이라고 여겨질지 모른다. 지금껏 진심을 다해 만들고 해마다 마진을 줄이고 있다. 우리의 소비자가 ‘어나더오피스’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옷이라고 여겨질 수 있도록.

서: 신동수 디렉터와 나 역시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다. 성의 없이 만들어진 옷을 보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패션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입는 사람이 편하고 잘 입으면 그 자체로 좋은 옷이니까. 삼성물산패션부문 근무 시절 삼성전자와 협업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다. 수원 삼성전자에서 6개월 정도 합숙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옷을 만들 때 ‘어나더오피스’라는 이름처럼 다양한 근무환경에서 무리 없이 우리 옷을 입을 수 있는지를 점검하며 만든다. 종종 택배송장에 ‘삼성전자 기숙사’가 적혀 있을 때, 우리 옷을 입고 열심히 일하고 있을 고객들의 모습이 그려져서 반갑다. 정말 다양한 일터와 직업군의 사람들이 우리 옷을 구매하고 있더라. 우리가 브랜드를 만들 때 생각했던 그림과 일치해 기분이 좋다.

 

– 두 사람을 포함해 스왈로우라운지, 어나더오피스는 어떤 모습으로 평가받고 싶나?

 

신: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가 젊은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길 바란다. 자본이나 마케팅에 의존하지 않고 옷만 잘 만들어도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은 하나는 ‘어나더오피스’의 옷을 만들면서 얻은 평온한 마음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우리의 옷을 4~5년간 만들면서 나 역시 담담하고 평온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 가까워진 걸 느꼈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옷과 아뜰리에 브랜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신: 사실 이번 가을 제한적이지만 ‘오버레이 저널(OVERLA Y JOURNAL)’이라는 조금 다른 콘셉트의 브랜드를 론칭했다. ‘어나더오피스’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한층 젊다. 스트리트 무드도 담겼다. 내년 봄부터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어나더오피스’를 체계적인 생산 시스템을 도입한 현대적인 아뜰리에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이 듬뿍 담긴 디자인과 대량 생산체계를 외부 자본의 투자나 개입 없이 자체적으로 이뤄 나가고 있다. 지금도 서주형 실장과 긴 여정의 중간 지점을 겨우 막 지나 계속 탐험 중이다.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다른 아뜰리에 브랜드가 정체성을 잃지 않고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는 방향키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